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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털그룹 13F: 브로드컴·알파벳 투톱, 엔비디아는 6위로 밀렸다

목차

8,464억 달러, 617개 종목 — ‘조용한 거인’의 크기

아메리칸 펀드(American Funds)를 운용하는 캐피털 그룹의 핵심 운용 조직, 캐피털 월드 인베스터스(Capital World Investors)가 2026년 6월 30일 기준 13F를 제출했다. 미국주식 평가액은 약 8,464억 달러(원화 약 1,168조 원), 보유 종목 수는 무려 617개다.

헤지펀드 13F가 ‘베팅’을 보여준다면 캐피털 그룹의 13F는 ‘체중 이동’을 보여준다. 617개를 들고 있는 운용사는 한두 종목을 던지고 사는 것으로 성과를 내지 않는다. 대신 상위 종목의 비중을 몇 십 bp씩 옮기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래서 이 기관의 공시는 개별 종목 뉴스보다, 상위권 순서가 어떻게 뒤바뀌었는가를 읽어야 의미가 생긴다.

이번 분기 상위 10개 종목의 합계 비중은 31.74%다. 617개 중 단 10개가 포트폴리오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겉보기엔 초분산이지만 실제 무게중심은 대단히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1위는 엔비디아가 아니었다 — 브로드컴·알파벳 투톱 체제

가장 눈에 띄는 건 순서다. 이 포트폴리오의 1위는 브로드컴(AVGO, 5.44%), 2위는 알파벳(GOOGL, 5.24%)이다. 엔비디아(NVDA)는 2.58%로 6위에 그친다. AI 대장주가 곧 최대 보유 종목이라는 통념과 정반대의 배치다.

더 중요한 건 방향성이다. 브로드컴은 비중을 늘렸고(평가액 +28.1%), 알파벳도 늘렸다(+40.3%). 반면 엔비디아는 비중을 줄였고 평가액도 -3.9%로 뒷걸음쳤다. 같은 AI 테마 안에서 범용 GPU에서 맞춤형 실리콘·자체 칩 진영으로 무게를 옮긴 그림으로 읽힌다.

브로드컴은 하이퍼스케일러 맞춤형 AI 가속기(ASIC)와 네트워킹 스위치를 함께 파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알파벳은 그 맞춤형 칩의 최대 고객이자 자체 TPU를 굴리는 주체이면서, 검색·유튜브·클라우드라는 현금흐름을 동시에 보유한다. 이 둘을 나란히 1·2위에 올려두고 함께 늘린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하나의 논리로 보인다. AI 지출의 수혜가 GPU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커스텀 칩과 인프라 전반으로 퍼진다는 판단이다.

상위 10개 종목 한눈에 보기

순위종목 (티커)비중방향평가액 변동
1브로드컴 (AVGO)5.44%비중확대+28.1%
2알파벳 (GOOGL)5.24%비중확대+40.3%
3마이크론 (MU)4.02%비중축소+139.4%
4필립모리스 (PM)2.85%비중축소+9.2%
5메타 플랫폼스 (META)2.72%비중축소-2.0%
6엔비디아 (NVDA)2.58%비중축소-3.9%
7마이크로소프트 (MSFT)2.43%비중축소-10.0%
8테슬라 (TSLA)2.27%비중확대+20.6%
9일라이 릴리 (LLY)2.25%비중확대+32.8%
10TSMC (TSM)1.94%비중확대+47.7%

확대 5종목(브로드컴·알파벳·테슬라·릴리·TSMC), 축소 5종목(마이크론·필립모리스·메타·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으로 정확히 반씩 갈렸다.

마이크론의 역설 — 평가액 +139%인데 왜 ‘비중축소’인가

이번 공시에서 가장 해석이 필요한 대목이 3위 마이크론이다. 평가액이 한 분기 만에 +139.4% 늘었는데 방향 표시는 ‘비중축소’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을 측정한다. 평가액은 ‘주가 × 보유 수량’이고, 확대·축소는 보유 수량 자체의 변화를 가리킨다. 즉 캐피털 그룹은 마이크론 주식을 일부 덜어냈는데, 그 사이 주가가 워낙 크게 오르는 바람에 남은 물량의 평가액이 오히려 두 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교과서적인 차익 실현 후 잔여 보유(trim, not exit) 패턴이다.

메모리 사이클, 특히 HBM을 둘러싼 수급은 지난 몇 분기 동안 가장 격렬하게 재평가된 영역이었다. 사이클 주식은 이익이 정점일 때 PER이 가장 싸 보인다는 함정이 있다. 대형 액티브 운용사가 급등 구간에서 수량을 줄이면서도 4%가 넘는 비중을 유지했다는 것은, 사이클 과열은 인정하되 구조적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는 절충적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비슷한 관점을 TSMC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TSMC는 반대로 수량을 늘렸고 평가액도 +47.7% 증가했다. 브로드컴·알파벳·TSMC를 함께 늘린 조합은 ‘설계–파운드리–최종 수요’로 이어지는 AI 공급망을 통째로 사들이는 모양새다. 반도체 4종목(AVGO·MU·NVDA·TSM) 합계 비중은 13.98%로 포트폴리오의 7분의 1에 달한다.

메가캡 플랫폼에서 조용히 발을 빼다

축소 명단의 성격도 뚜렷하다. 메타(-2.0%), 마이크로소프트(-10.0%), 엔비디아(-3.9%)는 모두 수량을 줄였고 평가액까지 감소했다. 주가가 밀린 구간에서 추가로 물량을 덜어냈다는 뜻이므로, 단순한 리밸런싱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감축이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10%는 상위 10개 중 가장 큰 평가액 감소폭이다. AI 인프라 투자(CAPEX)가 손익계산서에 감가상각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하는 국면에서, 지출 규모가 큰 쪽보다 그 지출을 수취하는 쪽(브로드컴·TSMC)을 선호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알파벳만 예외적으로 늘어난 것은, 같은 빅테크라도 자체 칩·검색 현금흐름·클라우드 성장을 동시에 가진 구조를 다르게 평가했다는 방증이다.

빅테크 플랫폼 3종목(GOOGL·META·MSFT) 합계는 10.39%로 여전히 두 자릿수지만, 그중 늘어난 건 알파벳 하나뿐이다.

AI 바깥에서 고른 두 장의 카드 — 테슬라와 일라이 릴리

확대 종목 중 반도체가 아닌 둘은 테슬라(8위, 2.27%, +20.6%)와 일라이 릴리(9위, 2.25%, +32.8%)다.

테슬라는 전기차 판매 사이클보다 자율주행·로보틱스 옵션 가치로 평가받는 종목으로 성격이 바뀌어 왔다. 변동성이 큰 만큼 대형 액티브 운용사가 비중을 늘렸다는 사실 자체가 시그널이 된다.

일라이 릴리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GLP-1 계열 대사질환 치료제를 축으로 한 헬스케어의 대표 성장주이며, AI 사이클과 상관관계가 낮다. 반도체 비중이 14%에 육박하는 포트폴리오에서 릴리를 키우는 것은 테마 리스크의 상쇄 목적으로 해석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필립모리스는 왜 여전히 4위인가

4위 필립모리스(2.85%)는 이 포트폴리오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 수량은 줄였지만 평가액은 +9.2% 늘었고, 여전히 메타·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보다 높은 비중을 지킨다.

담배·니코틴 대체 제품은 AI 사이클과 무관하게 굴러가는 고배당·고현금흐름 자산이다. 아메리칸 펀드는 근본적으로 수백만 명의 은퇴 자금을 굴리는 리테일 뮤추얼펀드 플랫폼이다. 기술주가 흔들릴 때 포트폴리오를 지탱해줄 방어 자산을 상위권에 고정해두는 것은 이 운용사의 오래된 문법이다. 성장의 상단은 반도체로, 하단은 담배·헬스케어로 받치는 구조인 셈이다.

리스크와 관전포인트

첫째, 집중의 역설이다. 617개 종목이라는 분산에도 불구하고 상위 10개가 31.74%, 그중 절반이 AI 공급망이다. AI 자본지출이 둔화되면 분산의 효과는 생각보다 작을 수 있다.

둘째, 마이크론의 다음 수다. 이번 분기에 수량을 줄였음에도 3위를 유지했다. 다음 분기에도 축소가 이어진다면 메모리 사이클 고점에 대한 확신이 굳어졌다는 신호로, 반대로 재확대라면 눌림목 매수로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셋째,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엇갈림이다. 같은 클라우드·AI 진영에서 하나는 늘고 하나는 줄었다. 이 격차가 유지되는지가 빅테크 내부 서열 재편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넷째, 브로드컴과 엔비디아의 역전 폭이다. 현재 5.44% 대 2.58%로 두 배 이상 벌어져 있다. 커스텀 실리콘 대 범용 GPU 논쟁의 실전 스코어보드로 볼 만하다.

숫자를 읽기 전에 — 45일의 시차

마지막으로 반드시 짚어야 할 한계가 있다. 13F는 분기 종료 후 최대 45일까지 지연 공시된다. 이 글의 기준일은 2026년 6월 30일이고, 공시가 공개되는 시점에는 이미 한 달 반이 지나 있다. 그 사이 캐피털 그룹이 마이크론을 더 팔았을 수도, 엔비디아를 되샀을 수도 있다.

또한 13F는 미국 상장 주식과 일부 파생상품만 담는다. 채권, 현금, 비미국 주식, 공매도 포지션은 보이지 않는다. 8,464억 달러라는 숫자도 이 운용사가 굴리는 전체 자산이 아니라 미국주식 부분만이다.

따라서 13F는 매매 신호가 아니라, 세계 최대 액티브 운용사가 지난 분기에 어떤 논리로 무게중심을 옮겼는지 확인하는 사후 지도로 쓰는 것이 맞다. 이번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은 비교적 선명하다. AI는 유지하되 GPU에서 커스텀 칩과 파운드리로, 메모리는 이익을 실현하며, 방어 자산은 놓지 않는다.

데이터 출처

#13F#캐피털그룹#브로드컴#마이크론#AI반도체#미국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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